네팔 대홍수가 학교를 덮치기 직전, 학생 900명을 대피시킨 교장
- 기자, 아쇼크 다할 & 카말 파리야르, BBC 네팔어 서비스
- Reporting from, 네팔, 누와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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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누와코트에 있는 트리부반 트리슐리 중학교의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은 홍수가 들이닥치기 불과 10분 전 신속히 학생들을 대피시켜 900명의 목숨을 구했다.
현재까지 9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 재난과 관련해 그는 BBC에 "오전 9시10분쯤 재난 경고 전화 네 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대피를 결정하고 아이들에게 고지대로 올라갈 것과 학생들이 가득 찬 버스들은 지역을 벗어나 유턴할 것을 지시했다.
다와디 교장은 "만약 우리가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10분만 더 지체했다면 학생들과 나를 포함해 우리 중 누구도 오늘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불과 몇 분 사이 4명으로부터 잇따라 걸려온 경고 전화는 다가오는 위험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한 학부모가 급히 찾아와 '큰 홍수가 나서 딸을 데리러 왔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그렇게 다급하게 뛰어올 리는 없으니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데 1초도 지체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설령 헛소문이라 해도 그저 하루 수업을 건너뛰는 것뿐이었다.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26일 네팔 전역을 초토화하며 최소 4247명의 실종자를 낸 이번 홍수로 학교 건물은 진흙과 잔해 속에 묻혀버렸다.
다와디 교장은 물살이 너무나 순식간에 들이닥쳐 강에서 100미터가량 떨어진 기숙사 건물까지 단숨에 휩쓸려 버렸다고 전했다.

많은 학생들이 처음에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지 못했다고 한다.
16세 학생 유니샤 아마탸는 BBC에 홍수가 닥치기 직전 친구들과 함께 급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홍수가 닥치기 직전까지 우리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한곳에 모여 계셨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몰랐죠. 5분쯤 지나서 선생님들이 오시더니 홍수 소식을 알리며 집에 가라고 하셨어요."
그는 재난 소식을 듣고 한 학생이 기절하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수학 수업 중이던 친구들을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유니샤와 친구들은 학교 뒤편의 비상 탈출로를 통해 언덕 위로 급히 뛰어올라갔다.
"제 발걸음이 느려서 친구들이 언덕에 올라가는 걸 도와줬어요.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가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학교 뒤편의 좁은 사다리를 타고 탈출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학교 주변 상가들이 눈앞에서 휩쓸려 나갔습니다." 그는 학교 주변의 상권 지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신발에 접지력이 없었다면 미끄러져 넘어졌을 거예요. 탈출하는 동안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가려고 서로 엉겨 붙어 밀쳐냈거든요. 다른 길로 탈출하려던 사람들은 결국 휩쓸려 가고 말았어요."

학생들과 교사들은 처음에는 안전을 위해 언덕 위로 수백 미터 정도 대피했다가 인근 마을로 이동했다.
도로가 끊기고 교통이 마비되면서 많은 이들이 구조 손길이 닿을 때까지 이틀 밤을 고립된 채 지내야 했다. 강 건너편에 사는 교장과 유니샤는 결국 헬리콥터 편으로 고향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편 부모들은 자녀와 가족들에게 연락하려 애쓰고 있었다.
유니샤의 어머니 사비나 쿠마리 슈레스타는 딸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두 사람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남편 유바라지 아마탸는 이미 학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홍수 소식이 퍼진 직후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아 덜컥 겁이 났다"고 그는 말했다.
"몇 분 만에 딸아이 학교로 달려갔는데 트리슐리 바자르는 온통 홍수로 휩쓸려 있었고 그때 딸이 살아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스쿠터를 멈춰 세웠습니다. 홍수가 나고 있었지만 딸 없이 되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거든요."
거의 1시간 동안 그는 딸의 생사조차 모른 채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유니샤가 전화를 받았다.
"딸아이가 전화를 받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저와 함께 있던 친척 두 명도 함께 울며 저를 안아 줬습니다."
유니샤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한 후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울고 계셔서 저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유니샤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의 어머니는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사흘 만에 아이를 보니 정말 기쁘고 안심이 되고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유니샤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앞으로의 학업이 걱정돼요. 학교를 옮겨야 한다면 예전 친구들도 그리울 테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렵겠죠. 학업을 이어가는 일이 걱정되고 슬퍼요."
다와디 교장은 사이렌이나 대피 경보 같은 더 나은 경보 체계가 있었다면 주민들이 더 빨리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즉각 행동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대참사를 막았다고 믿는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를 닫지 않기로 결정했더라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거예요. 9시30분에는 그저 종소리만 울리고 있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