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파서 내 얘길 하러 왔어요'...중증 장애인 시설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이 법정에 닿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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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문준아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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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성폭력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내 얘기를 하러 왔어요."
지능지수(IQ)가 43인 중증 지적장애인 서미현(가명) 씨가 경찰 조사에서 처음 꺼낸 말이다.
그의 말은 짧았다. 긴 문장을 만들거나 여러 정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피해의 기억은 또렷했다. 누가 자신에게 무엇을 했는지, 당시 얼마나 무섭고 아팠는지를 말과 몸짓으로 전했다.
서 씨는 인천 강화군의 중증 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 2016년에 입소한 뒤부터 시설장 김 모씨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2일 서울중앙지법은 색동원 전 시설장 김모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김 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서 씨가 처음 피해를 알린 지 약 1년 7개월 만에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세 명의 피해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김씨의 주요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피해자 1명과 관련한 범행에 대해서는 강간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항거 불능에 이르게 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피고인 김 씨측은 "의학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대로 공소사실이 특정됐다"며 성폭력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BBC는 김 씨 측 변호인에게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1심 유죄 판결에 대해 서 씨의 어머니는 "작은 메아리 같았던 저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재판부가 판단해 처벌해준 데 감사하다"며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성폭력과 같은 범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BBC에 말했다.
BBC는 이번 판결에 앞서 서 씨를 대리하는 고은영 변호사를 통해 서 씨와 가족들에게 인터뷰 질문을 전달하고 답변을 받았다.
오랫동안 밝히지 못한 일
서 씨가 색동원에 입소한 뒤 처음 피해를 알리기까지 약 8년이 걸렸다.
서 씨에 따르면 김 씨는 새벽에도, 저녁에도 방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서 씨의 항문과 생식기에 강제 삽입 행위를 하며 "황홀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시설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느냐는 BBC의 질문에 서 씨는 "없었다"고 답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김 씨와 한통속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혼자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그냥 참았다"였다.
또 그는 시설장의 협박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씨가 칼을 목에 대고 알리면 죽이거나 밥을 주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가족이 다시는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건이 외부로 드러난 계기는 지난해 2월 서 씨가 시설장의 성폭력을 손으로 막으려다 그가 던진 유리컵에 맞아 머리를 다친 일이었다.
서 씨를 대리한 고은영 변호사에 따르면 시설은 서 씨를 병원에 데려가 머리 봉합 치료를 마친 뒤에야 보호자에게 알렸다. 서 씨의 어머니는 부상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CCTV 공개를 요구했지만 시설 측은 권한이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어머니는 딸을 색동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서 씨가 성폭력 피해를 처음 털어놓은 것은 더는 시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이제는 색동원에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말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서 씨의 피해 진술을 계기로 경찰은 다른 색동원 입소자들의 피해 여부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강화군은 지난해 11월 색동원 거주인 심층조사를 우석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에 의뢰했다. 연구팀은 영화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과 전남 염전 강제노역 사건 등에서 장애인 피해자들의 진술을 수집하고 분석해 온 전문가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2월, 김민석 국무총리는 색동원 사건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중대 사안"으로 규정하며 범정부 합동대응팀 구성을 지시했다.
한편 복지법인 업계에서는 김 씨의 선처를 요청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일부 언론은 한국사회복지법인협회가 김 씨에 대해 "평소 복지 현장에서의 기여 등을 참작해 선처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작성하고 소속 법인들에 서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30일 한국사회복지법인협회는 "해당 탄원서를 작성하거나 소속 법인에 연명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BBC에 밝혔다. 인천 지역 회원 법인의 요청에 따라 탄원 추진 움직임을 다른 회원 법인에 알렸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사진 출처, 전장연TV
'여성 거주자 및 퇴소자 20명 성적 피해' 의심

사진 출처, 전장연TV
서 씨는 김 씨가 낮에도 성추행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색동원 2층 카페 앞 복도에서도 김 씨가 여러 여성 입소자들의 뒤로 다가가 이들의 성기를 만졌다는 것이다. 당시 김 씨는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린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BBC는 다른 거주인들의 피해 진술도 확인했다. 일부는 손이 밧줄에 묶인 채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한 거주인은 두 손목을 교차해 겹쳐 보이며 결박됐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에서의 불법 촬영 피해를 진술한 거주인도 있었다. 김 씨가 문 아래로 휴대전화를 넣어 용변을 보거나 씻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것이다. 김 씨가 촬영 뒤 "잘 나왔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영상을 1층 사무실의 큰 텔레비전으로 옮겨 봤다고 덧붙였다.
우석대 인지과학연구팀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색동원 남녀 거주인을 심층 조사하고, 그 결과를 담은 '색동원 피해자 심층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연구진 15명이 참여해 1박2일 동안 여성 거주인들의 의사소통 방식과 피해 가능성을 살폈다.
연구팀은 곧바로 성폭력 피해를 묻는 대신, 조사 첫날 대부분을 놀이와 여러 상황을 통해 각 거주인의 의사소통·인지·사회정서 능력을 파악하는 데 할애했다.
조사를 이끈 전지수 교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의사소통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를 먼저 파악했다"며 "그 능력에 맞는 방법으로 피해 진술을 받았다"고 BBC에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연구팀은 여성 거주인과 퇴소자 등 모두 20명에게서 성폭력이나 성추행 피해가 의심되는 정황을 확인했다.
예컨대 전 교수는 "한 방에 세 명이 함께 있었는데, 한 명이 성폭행을 당할 때 나머지 두 명도 깨어 있던 상황"을 조사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으로 꼽았다. 다른 거주인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이 벌어지고, 이를 목격한 사람도 이후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의 성폭력 공소사실은 여성 거주인 전원이 아닌 세 명에 관한 것이다. 전 교수는 "완전한 문장으로 피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진술만" 수사에서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이에 고 변호사도 다른 거주인들의 경우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과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해 형사사건의 피해자로 특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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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조현병, 망상으로 몰아가'

사진 출처, 고은영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화이트칼라 범죄와 기업·정부기관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고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을 개인 간 성폭력 사건이 아닌 "시설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기관 조사"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지역 경찰서에 곧바로 고소장을 내는 대신, 서 씨의 성폭력 피해로 남은 신체 상흔 사진과 의료자료 등 증거 자료들을 먼저 확보해 서울경찰청에 수사 첩보로 제공했다.
특히 서 씨가 색동원에서 생활할 때 복용한 정신과 약물은 재판의 쟁점이 됐다.
피고인 측은 재판정에서 서 씨가 조현병 치료제를 복용해온 사실을 근거로 "성폭력 피해 진술이 망상"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고 변호사는 서로 다른 시기에 서 씨를 진료한 두 대학병원 의료진의 소견을 제출했다. 두 의료진 모두 서 씨에게 조현병 증상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조현병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고 변호사는 시설 측이 보호자에게 약물 복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서 씨가 시설에 계속 머물 수 없다고 하며 시설이 약물을 이용해 서 씨를 통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복용 이력을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피해자를 '망상 환자'로 몰아 진술 능력을 훼손하려 한 "구조적 은폐"라고 표현했다.
이날 법원은 1심 판결에서 서 씨의 진술이 "조현병 등으로 인한 환청이나 환시 등 증상에 의한 진술이라고 볼만한 사정은 없다"라고 판단했다.

'아빠'라 불린 시설장, 그에게 집중된 권력

사진 출처, 전장연TV
"시설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은폐되고, 범죄라는 의식조차 없이 계속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윤태 우석대 인지과학연구소장은 시설에 마련된 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봤다.
거주인들은 시설장을 "아빠"라고 불렀다. 검찰은 이 호칭이 시설장과 거주인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시설 운영자와 종사자의 생계가 연결되고, 거주인은 먹고 자는 시간부터 외출과 의료까지 시설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운영자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만난 한 거주인은 "부모도 없고, 나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시설의 문이 물리적으로 닫혀 있지 않더라도, 삶의 모든 부분을 시설에 의존한다면 심리적·정서적으로 갇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색동원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해온 조하 대표는 자신이 만난 중증장애 시설 거주자 가족 가운데 학대를 의심하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거주인이 시설을 나오면 가족이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다른 시설로 옮기기도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시설에 밉보여서는 안 되는 거죠. 가족조차도. 그래서 찾아갈 때마다 음식을 사들고 가고, 돈을 쥐고 가고, 계속 고개를 수그리고 조아리고…."
그는 "여성장애인이 겪는 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성별과 장애, 시설화와 빈곤, 사회적 고립이 겹겹이 중첩된 구조적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도가니' 사건 이후, 무엇이 변했나?
2011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뒤 관련 법은 강화됐다.
그해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은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세분화하고 시설장과 종사자의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장애인에 대한 일부 강간·준강간 범죄의 공소시효도 폐지했다. 2012년 전부 개정돼 이듬해 시행된 법은 친고죄 조항을 없애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피해자를 위한 진술조력인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고은영 변호사는 처벌 규정이 강화됐어도 피해를 발견하고 범죄를 입증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의 은폐 수법도 법의 발전만큼이나 교묘하고 고도화됐습니다."
고 변호사는 과거에는 물리적 폭력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막았다면, 색동원 사건에서는 정신과 약물 복용 이력이 피해자의 진술 능력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설 내 정신과 약물 투여 기록을 외부 의료기관이 정기적으로 교차 검증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정기 행정점검과 별도로 시설 전체의 권력관계와 기록을 살피는 독립적인 '기관 조사' 제도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진 시설 운영자가 연루된 경우 광역 단위 이상의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사건을 맡을 수 있는 통로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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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색동원 성폭력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뒤, 한국 정부는 대응에 나섰다.
지난 4월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1507곳을 점검해 피해 의심 사례 33건을 발견했으며, 이 가운데 8건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위험요인을 기준으로 한 특별점검과 지자체·경찰·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합동점검도 강화하기로 했다.
강화군은 색동원에 시설폐쇄 처분을 내렸고, 인천시는 운영 법인의 설립허가를 취소했다. 다만 시설폐쇄는 남은 거주인들의 이동과 자립이 완료될 때까지 유예됐다. 법인은 설립허가 취소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시는 색동원 거주인 33명 전원에 대한 개별 자립지원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며, 자립 절차는 아직 진행 중이다.
BBC는 서 씨에게 색동원을 나온 뒤 무엇이 가장 달라졌는지 물었다.
"그냥 평안해요. 매일 기뻐요."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먹고 잘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좋다고 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것조차 서 씨가 되찾아야 했던 일상이었다.
그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원장과 인연을 완전히 끊고 다시는 얽히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 씨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 안심하고 살아갈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장애인들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고, 성폭력 없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어요."






















